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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외여행/터키

비잔틴 미술의 최고 걸작! 아야소피아 성당

아야 소피아 박물관 Aya Sofya Museum


터키어로 신성한 지혜의 교회라는 의미의 아야 소피아는 AD 537 동로마제국의 황제였던 유스티아누스 1세에 의해 건설되었다. 현재는 박물관으로만 쓰이며 기독교와 이슬람 사원의 모습을 모두 찾아볼 수 있어 비잔틴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역사 유적으로 꼽힌다.

비잔틴 형식으로 지어졌지만 로마 건축물의 영향을 받아 독특한 건축 양식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당시의 건축 기술과 이러한 규모만으로도 사람들은 이 사원을 신성시할 수 밖에 없었는데, 이러한 거대한 사원은 인간의 뜻이라기보다는 성스러운 기운의 도움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믿는 중세의 신비주의를 믿었기 때문이다.

처음 지어졌을 때 비잔틴 사람들에게는 Megale Ekklesia 위대한 성당 으로 불려졌으며, 1453년에 터키인들이 이스탄불을 정복했을 때부터 아야 소피아라고 불리우게 되었다.





고대 로마시대에 집회 또는 재판을 위해 쓰이던 바실리카의 모양을 본 따 목재의 지붕을 더해 둥근 돔 형태로 지어진 아야 소피아의 첫 번째 교회는 404년 6월 20일 이오니스 크리스톰이 아나톨리아로 망명을 가자 일어난 반란에 의하여 불에 타게 된다.

화재사건 이후 Theodosius 2세 황제의 지배 아래 재건축이 시작되었지만 532년 1월 13일 유스티아누스 1세가 황제위를 물려받는 도중 반대 세력에 의하여 또 다른 반란이 일어 났고 아야 소피아는 두번째 화재로 다시 불타버리게 된다.

반란을 막은 후 유스티아누스 1세는 아야 소피아의 재건축 대신 화재로 훼손 된 것보다 더 크고 견고하며 화려한 성소를 짓기를 명하고 5년 여의 건축과정 동안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완성 후에도 아야 소피아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지진과 화재 그리고 전쟁과 약탈로 성스러운 성소들과 성화들이 훼손되고 복구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이스탄불은 1453년 5월29일 술탄 메흐메드(Sultan Mehmed) 2세에 의해 정복되고 그는 제일 먼저 아야 소피아를 이슬람의 신전인 사원으로 변형하라고 지시한다. 이 때 기독교의 성화들이 모두 회칠로 덮이게 되어서 원래 모습을 감추게 된다.

바깥 잔디밭에서 가족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1935년 오토만 제국이 멸망한 후 터키 공화국이 건립되고 아야 소피아는 터키 공화국의 창시자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에 의해 박물관으로 바뀌었다. 그 시기에 박물관의 성화 복구 작업으로 회칠로 가려져 있던 기독교 성화들이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고 현재는 2층의 갤러리에서 관람할 수 있다.




아야 소피아로 들어가면 정원을 지나 외랑과 내랑을 거쳐야 본당으로 들어갈 수 있다.
외랑은 내랑으로 통하는 5개의 문을 가진 구조물이다. 이어지는 내랑은 외랑보다 훨씬 높고 큰 규모이다.





건물의 수리와 유적의 복구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중앙문인 제국의 문



'제국의 문'이라고 불리는 중앙문 위에는 레오 6세 황제가 예수에게 재혼을 허락해 줄 것을 간청하는 모자이크가 있다. 이 모자이크는 오토만 제국 때 아야 소피아가 이슬람 사원으로 쓰이게 되면서 회칠로 덮였다가 1930년 대에 이루어진 복구 자업 후에 지금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성모마리아 천정화




본당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중앙의 화려한 기도실과 천장에 달린 커다란 원판이다. 본당 내부의 8개의 원판은 직경이 무려 7.5m 나 되는데, 19세기 술탄 압둘메지트 통치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이 원판에는 알라, 예언자 무함마드, 4명의 정통 칼리파, 무함마드의 외손자이자 알리의 아들인 하산과 후세인의 이름이 적혀 있다.








위키백과 참조


아야 소피아에는 2개의 거대한 대리석 항아리가 놓여 있다. 페르가몬 항아리라는 이 항아리는 술탄 무라드 3세가 페르가몬 지역에서 가져온 것인데, 헬레니즘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무려 1250L에 달하는 물을 담을 수 있으며, 거대한 대리석 바위 하나를 깎아 만들었다. 오스만 제국 시대에는 예배 중 사람들에게 음료를 나누어주거나 몸을 닦을 수 있게 물을 저장해 놓는 용도로 주로 쓰였다


성당의 북서쪽에는 중간에 구멍이 뚫린 청동으로 감싸진 기둥이 하나 서있다. 이 기둥은 소원의 기둥, 땀흘리는 기둥, 눈물흘리는 기둥 등과 같이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이 기둥은 만졌을 때 축축하다고 하며, 초자연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어져 왔다. 전설에 의하면 1200년에 성 그레고리가 이 주변에서 기적을 일으켰고, 그 때부터 이 기둥이 축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 기둥의 습기를 만지면 많은 질병들을 치유할 수 있다고 한다.



옴팔리아
역사적으로 이 곳은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들이 즉위식 때 앉아있던 자리였다고 한다. 13세기 초에 적힌 기록에 의하면 "아야 소피아에는 거대한 붉은 대리석이 있는데, 이 위에 황금 옥좌가 있어 비잔틴의 황제들이 이 위에서 대관식을 치루었다."라고 적혀있다.




이런 기도실이 양 옆에 있는데, 관광객들이 걸터 앉아 쉬고 있다.
유적지가 방대해 하루에 다 돌아보려면 체력이 많이 소모될 것이다.




황금색으로 칠해진 천장에서 반복적으로 그려진 기하학적 무늬들을 볼 수 있다.





명소라 최대한 많은 것을 눈에 담으려고 따라 다녔으나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본당만 대충 사진 찍고, 다른 멤버들이 2층 갤러리로 올라간 사이, 부랴부랴 바깥으로 나와 공원벤치에 쓰러지듯 주저 앉았다.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고 하는 가이드의 설명을 못들은 게 못내 아쉬웠다. 몸이 성치않으니 너무 괴로웠다. 성지순례를 온 수도승들도 잠시 쉬어간다.




중국 관광객
장소 불문하고 싸우듯이 대화하는 그들은 어디서든지 티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