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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외여행/터키

파묵칼레를 향해 다시 야간버스를 타다.

 

 

야간버스의 옆자리에 20대 초반의 중국여자가 앉았다. 아마도 홍콩이 아니었을까싶다. 홍콩에서 온 중국인들은 영어도 능숙하고 어딘지 본토 사람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일행인 세명 중에, 두명은 통로 건너편 자리에, 한명은 내 옆자리에 앉았다.

 

대학때 쫌 익혔던 중국어로 살포시 말을 건네본다. 대체로 본인 나라의 언어를 구사하면 일단 놀라면서 반가워 해 주는데, 그녀는 경계하는 눈빛으로 시큰둥한 표정이다. 저녁식사로 만두국같은 파스타를 사와서 펼쳐놓고 먹는다. 정서가 다른 것인지, 우리 같으면 예의상 옆사람에게 양해를 구했을텐데 전혀 개의치않고 쩝쩝소리까지 내며 먹방을 시전한다.  가방은 나와 본인 사이에 담을 쌓듯이 떡하니 놓아 그렇지 않아도 비좁은 자리 굉장히 불편한 상태로 가야했다. 국적과 나이를 떠나 한마디로 배려심이 없는 여자였다. 

 

건너편 두 친구는 가는 내내 몇시간을 쉬지않고 떠들어 댄다. 와~ 어떻게 그렇게 쉬지않고 얘기가 이어질수 있는지~ 중국사람들 떠드는 모습을 호떡집에 불났다고 표현하는데 괜히 그런 말이 생긴 게 아니었다.  내내 잠만 자던 옆자리녀에게 친구들은 무슨 얘기를 저렇게 하냐고 물으니 다른 친구들 얘기라고 한다.

 

새벽녘에 파묵칼레 오토가르에 도착했다. 우왕좌왕 급하게 내려서 거제도 남녀에게 인사도 못하고 흩어졌다.  도중에 잠시 정차한 휴게소 구석에서 담배 한개비를 나눠 피우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담배를 피우는 여자는 느낌이 강하다. 거친 삶의 내음이. 그렇게 독특한 캐릭터인데 고추장 건네주는 모습에서 예상치못한 반전의 따스함을 느꼈다. 그 후 며칠간 요긴하게 써먹었다. 튜브형 양념고추장!

 

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안내받은 곳은 블로그에서 본 '아르테미스' 호텔 겸 여행안내소이다. 숙소가 근처이거나 픽업차가 마중나온 사람들은 이미 떠났고, 숙소가 멀면서 픽업이 안된 여행자들만이 대기실에 남았다. 날이 밝고 셔틀버스가 운행을 하면 타고 가야 하는 것이다.

 

두 명의 일본청년, 큰 베낭을 멘 일본여자, 딱 붙어있는 영어권 연인, 중년의 중국 부부!  카운터에 가서 예약 된 호텔 바우쳐를 보여주고 어떻게 가느냐고 물으니 뭐라뭐라 설명을 하는데, 도통 알아듣질 못하겠다. 몇번을 되물으니 승질을 낸다. 말은 안통하지, 누구하나 속시원히 일러주는 사람은 없지. 갑자기 엄마손을 놓쳐 갈 곳을 잃은 아이의 꼴이 돼버렸다.

 

완전 우울한 기분으로 소파에 앉아 있는데, 대머리 직원이 다가오더니 챠이나? 자팬? 하며 깐죽거리듯 말을 건다. 불안하고 우울함에 짜증이 가중된다. 행글라이더를 타라고 호객하는 것이다. 이 팀 저 팀 돌아다니며 변죽 좋게 말을 걸다가 걸려든 두 일본 청년과 함께 밖으로 나간다. 몇 분 후에 돌아와서는 가격 협상이 잘 타결됐는지 친하게 농담을 주고 받는다.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까지는 좋으나 불쾌감이 드는 그 직원한테는 신청하고 싶지 않다.

 

날도 서서히 밝아오고 마냥 앉아 있기가 지루해, 호텔 안쪽도 둘러보고 밖에도 나가 봤다. 그곳은 우리의 삼거리 비슷한 곳으로 버스사무실이 여러군데 있는 간이 터미널같은 곳이었다.  반가운 메트로사무실도 있다. 기웃기웃하니 직원이 들어오라고 손짓을 한다.  안에는 한국여자 세명이 있었다. 오오오~ 반가워라.

 

그녀들은 그곳에서 셀축행 버스를 예약하고 있었다. 나도 해야 했는데 잘됐다 싶었다. 활달한 터키직원은 한국말을 섞어가며 셔틀버스가 몇시에 오며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 내일 차편은 어떻게 되는지 열성적으로 설명해준다. 아르테미스 안내소 직원과는 달리 친절한 설명에 불안한 마음이 누그러졌다. 다음날 아침 9시 버스를 예매했다.

 

세명의 한국여자도 떠나고 사무실에는 두명의 터키직원과 나, 세명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활달한 직원이 와이프가 일본인이라며 앨범을 보여준다. 나는 촉규젤(예쁘다라는 뜻)하며 그의 말에 부응해줬다. 줄창 카운터에 앉아 있는 직원을 가리키며 아직 결혼을 못했는데, 누구 소개시켜줄 사람 없냐고 하는 것도 같고.

 

잠시후에 버스가 도착했는데, 그건 바로 돌무쉬였다. 안내서에 셔틀버스라고 나와 있어서 무료서비스인줄로만 알았는데..

언어소통이 안되다보니 놓쳤을수도 있다. 약 20분 정도 달리니 호텔앞이라며 내리라고 한다. 내릴 때 2리라를 냈다.

 

시내에서 꽤 떨어져 있는 숙소이다. 밀밭으로 둘러싸인 허허벌판에 두어채의 숙소만이 덜렁 세워져 있다. 매일매일이 새로운 곳이고 두려운 마음으로 다시 적응해야함의 연속이다. 처음 도착했을 때가 가장 문제이다. 호텔에서 픽업을 나오면 다행이지만 지금처럼 픽업이 이루어지지 않았을때 대응책의 강구가 제일 두렵다. 문제는 언어.

 

호텔에 가서 바우쳐를 보여주니 10시나 되어야 입실이 가능하다고 한다. 1시간이나 남았는데. 로비 소파에 앉아 이것저것 정리하며 하루 일정을 짜본다. 우루루 사람들이 몰려 나온다. 딱 봐도 한국인들이다. 일정을 마치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고 짐을 꾸려 나오는 중인 것 같았다.

 

본토 사람들도 잘 안보이는 이 외딴 곳에 한국 단체관광객이 머문다는 건 여행사들과 계약을 맺었다는 뜻이다. 그들은 나가면서 나를 힐끔 쳐다본다. 말걸어보고싶은 마음 굴뚝 같았으나 고개 숙이고 모르는척했다. 이스탄불에서 야간버스 탈때 겪은 트라우마로 먼저 말붙이기가 두려웠다.

 

방을 배정받고 올라간다. 투배드. 밤새 야간버스에서 시달려 그냥 드러눕고 싶었으나 빡빡한 일정 임무완수를 위해 샤워하고 화장하고 베낭을 메고 무거운 몸을 일으킨다.

 

광고에도 나왔던 굉장히 독특한 풍경의 파묵칼레 석회붕! 얼마나 환상적일지 얼른 가서 두눈으로 확인하고 싶다.  수영까지는 아니더라도 발이라도 담궈보려고 수건과 슬리퍼를 챙긴다. 카운터로 가 파묵칼레 가는 방법을 물어본다. 걸어서 10분정도 걸린다고 한다.

 

돌무쉬를 타고 오면서 보니 신전 입구에서 다음 정거장이 호텔이었으니 걸으면 금방 도착할 것이었다. 설마 이곳의 한 정거장이 우리의 두정거장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겠지? 우리의 초여름같은 뜨거운 날씨에 사방은 밀밭이고 차도 뜸한 고요한 길을 걸어도 걸어도 신전입구는 나타날 기미가 없다. 히에라폴리스 신전과 파묵칼레가 연결되어 있어서 일단 신전입구만 가면 되는데. 한 20여분을 걸으니 드디어 신전 입구가 보인다.

 

청소하는 아저씨한테 안내서를 보여주니 이곳이 맞다며 길을 따라 들어가라고 한다. 고대 그리스시대의 돌들이 여기저기 널려있다. 제대로 오기는 왔구나 싶었다.

 

안내서에 의하면 히에라폴리스와 파묵칼레가 바로 연결되어 있다고 하니, 한시름 놓는다.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매표소가 있다. 그곳은 북쪽의 후문이었다. 세명의 현지인이 있어 직원인줄 알고 확인차 히에라폴리스가 맞냐고 물어봤는데 그들은 직원이 아니고 아버지, 엄마, 아들 이렇게 한 가족이었다.

 

아버지는 선생님(전기계통),  금요일인 그날은 수업이 없어 가족들과 바람쐬러 나왔다고 한다. 엄마는 뭔가를 재배하는 농사일을 한다고 아들이 설명해 줬는데, 그 뭔가가 무엇인지를 못알아 듣겠다. 25살인 아들은 무슨 엔지니어라고 한다.

46살인 엄마는 고생을 했는지 나이보다 더 들어보인다. 한참 위인 내 나이를 말하기가 왠지 쑥스러워 뻥치고 나이를 줄여 말한다. ㅠㅠ.

 

현지인과 함께하면 몰랐던 정보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아 양해를 구하고 졸졸 따라 다닌다. 아버지는 담배를 많이 피우는지 연신 가래끓는 기침을 한다. 차분한 성격의 아들은 배운사람답게 영어를 잘 구사하는데, 나의 듣기 실력이 따라가지 못해 놓치는 부분이 많았다. 아담한 체구에 대머리에 수염까지 길러 겉늙어 보였으나 찬찬히 보면 앳띤 얼굴, 선한 눈매에서 제 나이가 보인다.

 

유적에 대해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는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참 순박한 가족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들의 보폭에 맞춰 부지런히 유적지를 눈에 담는다.

 

 

 

 

 

 

호텔앞 삼거리

땡볕에 저 길을 따라 20여분은 걸은 것 같다. 

 

 

 

 

 

 

 

땡볕에 걸어서 드디어 도착한 히에라폴리스 북쪽 입구

파묵칼레석회붕과 히에라폴리스의 후문인셈이다.

 

 

 

 

 

 

 

나들이 나온 터키 일가족

 

 

 

 

 

 

엄청 순박했던 여인. 언니같은 따스함이 느껴졌다.

 

 

 

 

 

 

눈이 선한 아들 

 

 

 

 

 

 

파묵칼레 석회붕에서 물놀이를 하다가 헐벗은 상태로 유적지를 돌아보기도 한다.

 

 

 

 

 

 

유적지마다 설명서를 꼼꼼히 읽으며 대화를 나누는 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