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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외여행/네팔

오스트렐리안 롯지에서 히말라야의 웅장한 자태를 감상하자

 

 

 

5월 18일 포카라 둘째날

 

밤에 모기가 기승을 부려 2시 30분에 잠이 깨 쭈욱 못잤다. 불을 켜고 보니 시커먼 모기 한마리가 벽에 떠억 붙어있는 게 아닌가? 손바닥으로 지긋이 눌렀으나 피가 안묻어난다. 헌혈한 피가 꽤 되는데... 그렇다면 피를 잔뜩 머금은 또다른 놈이 있다는 소리? 찾아봤지만 실패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다시 불을 끄고 누웠다.

 

그러나 일초도 안돼 윙윙~ 다시 일어나 불을 켜니 서너마리가 보인다. 눈에는 보이나 잡히지는 않는 잽싼것들. 잠이 십리는 달아났다. 선풍기도 틀어보고 시트를 뒤집어 써보기도 했지만 무는걸 막을수는 없었다. 그러다가 날이 밝았다. 6시. 일어나 돌아다닐까 했으나 잠을 못잤다는 강박관념에 좀 더 뒤척인다.

 

9시에 슬슬 나가본다. 자전거를 타기에는 더운 날씨라 일단 걸어서 메인거리를 돌아본다. 찬찬히 둘러보니 한국식당이 세군데나 있었다. 그 중 제일 깨끗해보이는 곳으로 들어갔다. 연로한 한국인이 운영하는 한국식당이었다. 74세

 

대한항공에서 엔지니어로 오랫동안 일하다가 퇴직하고 몽골에서 7년정도를 자동차딜러로 근무하고 다시 한국에 돌아왔으나, 오랜 외국생활로 고국이 낯설고 적응하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신문에 실린 코이카봉사자 모집광고를 보고는 바로 이거다싶어 지원하여 태국에서 2년 네팔에서 7년간의 봉사활동으로 했다고 한다.  코이카 시니어직군에 지원하려면 한 분야에서 10년이상 일했다는 증명서가 있어야 하는데, 그분은 오랫동안 항공사에서 일한 게 전문직으로 인정되어 바로 투입될 수 있었다고 한다.

 

카투만두대학에서 5년, 포카라대학에서 3,4년을 엔지니어링에 관한 강의를 했고, 나이가 많아 더이상 활동을 못하고 포카라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중이라고 한다. ​나이 제한을 두게 된 게 연로해지면 여기저기 몸의 이상이 와 치료비도 많이 들고 귀국하는 일이 잦아져 업무수행에 차질이 생겨서라고 한다.

 

식당은 월세가 70만원이고 현지인 직원 한명이 도와주는데, 버는 걸로 충당이 된다고 한다.

 

내가 관심있게 듣자 그는 코이카에 대해 자세하게 알려준다. 전문직군인 시니어를 지원해 합격이 되어 봉사를 하게 되면 현지에서 생활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충분히 지원을 해준다고 한다. 본인도 대학에 있을 당시 필요한 기자재가 있어 서류를 작성해 제출했더니 5천만원의 지원금이 나와 강의에 필요한 도구를 사고 나머지는 경비로 충당을 했다고 한다.

 

2년의 계약기간이 만료되어 한국에 돌아가면 일년에 천만원의 연봉이 통장으로 들어온다고 한다. 노후를 그렇게 보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분도 57세에 시작했다고 하니. 젊은이들이 많이 지원해 투입되지만 막상 가보면 생각했던것과 거리가 있어 중도에 그만두고 돌아가기도 하고, 혈기왕성함에 봉사보다는 연애활동에 중점을 두기도 한다고 한다.

 

한가지 부인과는 그렇게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도 괜찮냐고 하니 자기 나이가 되면 각자 알아서 사는 것이라며 웃어넘긴다. 그때만해도 그분이 인생을 참 다채롭게 사는 것 같아 보기 좋았는데, 그날 트레킹하면서 들려준 가이드의 말을 듣고는 대실망을 하고 말았다. 그분이 끓여준 된장찌게는 고기(네팔 물소)가 들어가 고유의 맛은 아니었지만 청결면에서는 에이프러스이다.

 

좀 더 흥미진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오후에 트레킹 일정이 잡혀 있어 1시까지는 호텔에 돌아가야 하므로 서둘러 일어난다.

 

포카라에 독특한 폭포가 있다고 해서 가 볼 참이다. 자전거를 타고 갔다면 딱 좋았을 거리였으나 너무 더워서 슬슬 걸어간다. 가다가 부메랑에서 연주하던 아저씨를 또 만났다. 세번째다. 이젠 지인을 만난듯 반갑기까지 하다.

 

다른 곳에서의 연주일정이 잡혔는지 일행들과 버스를 타려고 하는 것 같았다. 데비폭포에 간다고 하니 마침 들어오고 있는 버스를 가리키며 저 버스를 타면 된다고 한다. 차장한테 재차 물어보니 가다가 로터리에서 내려 길건너에서 갈아타라고 한다.

 

여기는 버스가 작고 낡고 차장이 젊은 남자다. 내려서 길을 건너가 다시 지나가던 여자한테 물어보는데, 그때 오던 지프같이 생긴 차를 타라고 한다. 요금도 5루피 더 싸다. 5분정도 가니 내리라고 한다. 자전거를 탔으면 적당할 거리이다.

 

폭포로 들어가는 입구가 늘어선 상가 가운데에 조그맣게 있어서 모르고 지나치기 쉽겠다. 푹 꺼진 땅속에 폭포가 형성된 희한한 형태이다. 1시까지 모이라고 하여 부랴부랴 둘러보고 다시 오던 그대로 두번의 버스를 타고 되돌아간다.

 

그 와중에도 마트에 들러 롯지에서 먹을 양식을 샀다. 1시전에 숙소에 도착해서 다행이다 싶었는데, 이게 웬일인가? 호텔직원이 다들 이미 떠났다고 하는 게 아닌가? 카톡을 보니 찾는 문자가 와 있었다. 길잡이 한테 답장을 하니 근처에서 수신음이 들린다. 잠시 후 당황한 표정으로 길잡이가 들어온다.

 

내가 자전거를 탈거라고 해서 자전거 대여점을 죄다 뒤지고 다녔고 혹시 사고라도 나서 길바닥에 쓰러졌는줄 알고 엄청 걱정했다고한다. 1시까지인줄 알았는데, 12시까지였던 것이다. 그러게 평소에 끙끙 앓지말고 말 좀 속시원하게 하면 이런 사단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남탓.

 

어딘지 영적인 분위기가 인도와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을 통솔하는 일을 하기에는 답답한 면이 있다. 어쨌든 내가 잘못 알아들어서 벌어진 사단이니 미안하긴 했다. 앞팀은 이미 출발한 상태이고 우리 둘은 회사에 사정얘기를 하고 택시를 타고 갔다. 택시로 한시간여를 달려 등산로 입구에서 내렸다.

 

거기에서부터 한시간반 가량을 등산해야 한다. 짐을 장바구니에 챙겨와서 들고가기도 번거롭고 오랫만에 하는 등산이라 땀이 주룩주룩 흐른다. 쉬엄쉬엄간다. 어떤 이는 포터와 함께 가는데, 5,6일 정도 트레킹을 하는 일정이라고 한다. 산의 분위기가 우리나라와 매우 흡사하다.

드디어 도착. 오스트렐리안 롯지. 와우~ 날도 맑아 안나푸르나가 선명하게 보인다. 장관이 아닐수 없다. 식당에 들어서니 이미 여러병의 맥주를 던지고 있던 박사장이 왜 늦었냐고 묻는다. 시커먼 썬그라스의 낯선 여자와 함께 있어 수컷의 본능에 충실하는가보다 했는데, 먼저 떠난 일행을 데리고 온 길안내인이라고 한다.

숙소에 짐을 놓고 전망대쪽으로 향한다. 전망대로 가는 길가 식당의 메뉴가 완전 한식이다. 구색이 갖춰져 있고 심지어 미역국까지 있다. 한국인들 무지하게 오는모양이다. ㅎ  한바퀴 휘익 돌아보고 길잡이가 사 온 맥주 한모금 하며 멀리 설산을 바라보노라니 왜들 그렇게 이곳 에베레스트에 오고싶어 하는지 조금은 알것 같다.

 

아담한 청산 저 너머에 솟아있는 거대한 설산, 그야말로 웅장하다. 운좋게도 날씨가 최고조로 청명해 장엄한 산의 완전체를 감상할 수 있었다. 말로 표현못할 감동이 밀려온다. 한참을 넉놓고 웅장함에 압도당하고 다시 식당으로 향한다.

내가 사간 라면 두개를 부탁해서 끓여달라 하고 오이를 썰어 고추장에 찍어 흡입했다. 박사장과 흠, 안내인은 이미 한잔씩들 한 상태였다.

 

그녀는 산이 좋아 이곳 네팔에 왔다가 등반대장인 남편을 만나 결혼한지 5년되었다고 한다. 11살이라는 적지않은 나이 차를 뛰어넘었을 때는 산이라는 둘만의 공통분모가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포카라에서 한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페러글라이딩 예약하러 갔을때 보니 네팔인 직원 한 명 두고 둘이 소박하게 꾸려가고 있었다. 거들먹거리는 박사장 입에서 무슨 말이 튀어나올지 몰라 바로 일어나 숙소로 돌아온다. 나이에 상관없이 굉장히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과의 언쟁은 되도록이면 피하는 게 상책이다.  그가 보내온 카톡에 나를 '아주머니'라고 칭했다. 아~놔~  

 

7시정도가 되니 어두워져 강제 잠자리에 들어야했다. 8시에 잠자기 시작하니 2시정도에 눈이 떠진다. 잠들어 다시 눈을 뜨니 5시30분이다. 자도자도 새벽이다. 구름이 잔뜩 껴 일출의 장관은 맞이 하지 못했다.

 

아침으로 볶은면과 맛살라밀크티를 먹었다. 양만 많고 면발이 퍽퍽하여 경험으로 한번 먹어보는 거지 다시 먹고싶지는 않은 맛이다. 박사장이 튜브고추장을 가져와서 섞어 먹으니 그나마 좀 낫다. 떠껀한 밀크티는 좋았다.

 

식사를 하고 밖의 탁자에 앉아 있자니 포터가  기타로 '예스터데이'를 연주하는데 제법이었다. 반주에 맞춰 흥얼거린다. 날이 흐려지니 비오기 전에 내려가야한다고 해서 짐챙겨 하산한다. 달리기 경주라도 하듯 다들 뛰다시피 내려간다.

 

 

 

 

 

 

 

포카라에서 만난 한국 식당 주인

세상에는 개성 있게 사는 사람들이 많아요.

 

 

 

 

 

 

연세 있는 남자분이 으찌나 깔끔하게 관리 하시던지

 

 

 

 

 

 

데비스 폭포

 

 

 

 

 

 

1961년 7월 31일 정오에 스위스인인 데비스 부인은 폭포에서 몇m 떨어진 곳에서 남편과 수영을 하고 있었는데,

그만 실수로 미끄러져 떠내려가 죽었다. 어렵게 겨우 시신을 발견하게 됐는데, 그 후로 데비스 폭포라고 불리게 되었다.

슬픈 사연이 있는 폭포였네요.

 

 

 

 

 

남자 차장

차비도 받고 문도 열고 닫아준다.

 

 

 

 

 

 

시골스러움이 물씬 나는 정감 느껴지는 버스에요.

 

 

 

 

 

 

오스트레일리언 롯지에서 바라본 히말라야 영봉

 

 

 

 

 

 

실제로 보면 훨씬 웅장해요.

 

 

 

 

 

 

내려오면서 보이는 풍경

개간을 많이 했어요.